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일붕이 하와이에서 일본 불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던 그해에는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미행정협정의 조인 등 한미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험프리 부통령, 버거 국무성 차관보, 러스크 국무장관 등이 잇달아 방한했고 한미평화봉사단협정에 서명했다. 한편 국내에서는 전 내각 수반을 지낸 장면 씨의 사망(6월 4일), 김기수 선수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획득(6월 25일),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7월 29일) 등의 기억할만한 일들이 있었다. 한국과 미국 간에 정부와 정부 또는 각료와 각료 사이에 맹방으로서의 유대를 다지고 있을 때 일붕은 학문과 인격, 그리고 수행에서 우러나온 참선을 갖고 조용히 미국 곳곳을 뒤흔들며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다음 글은 일붕이 하와이대학에서 공개강연을 통해 발표한 <왜 불교를 배우는가>란 주제를 간추린 것이다. 불교는 많은 분야가 모여 성립되었으며 깊고 오묘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종교이기도 하지만 철학과 과학이기도 하다. 선을 포함한 불교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먼저 종교로서의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자비의 목적은 현
법왕청신문 이정하 기자 | 부처는 어디에 계신가? 우리는 불교를 믿으면서도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산으로 절로 찾아다니면서 부처가 나타나서 은혜를 내려주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실상 부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불교의 경마다「衆生과 諸佛이 一理齊平하다」 「일체중생에 모두 佛性이 있다. '부처님 몸이 법계에 충만하다'하는 말씀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요 부처가 일체중생일 터인데, 나라고 부처가 못되란 법이 있는가? 물론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내가 나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절대 부처가 아니다. 또 일체 만물을 보아도 부처가 아닐 뿐 아니라 부처를 조금도 닮지 않았다. 왜 이런 엉터리 말이 나왔을까? 그렇다고 부처님 말씀을 엉터리라고 단정지을 수 는 없는 일인데, 나 또한 나를 잘못 보았다고 할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나를 잘못 보지 않은 이상 부처님 말씀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이 말은 이렇다. 나는 나의 입장에서 나를 본 것이고 부처님은 부처님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나 모두
법왕청신문 이존영 기자 | 또한 일붕은 세상을 경악케 했던 사이비종교의 발호에 대응하는 의미에서迷信과 正信이란 글을 일간지에 싣기도 했다. 사이비종교 단체들이 신들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害를 끼치던 때였기 때문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글에서 일붕은 인륜과 도덕을 무시하고 해악을 끼치는 행위는 결코신, 그리고 정교와 사교의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성종교로서 세계적인 신앙으로 자리 잡은 종교라 할지라도 시대의 추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곤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점은 어느 종교도 마찬가지다. 즉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종교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열렬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으면서도 당시의 목사나 선교사의 설교를 이렇게 비판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이 믿는 성경 가운데도 어느 시대이건 만인 모두가 받들어 행할 것이있고 너무도 맹랑하고 허황되어 돌아볼 가치가 없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어리석은 교인들은 시대에 맞는 심금을 울리는 교리는 찾으려 하지 않고 원시시대의 신화와 같은 예수의 기적만을 가지고 떠들고 선전하고 있으니 가증스럽고 딱 한 일이다. 기독교는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내부적인